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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엄마는 인생을 건 모험을 시작했다

호주생활 별책부록 “발달장애아동과 살아가는 법”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01-07 13:27:43
“You need someone to laugh with about the humorous things our children do. You also need someone to cry with in those moments that you feel things are never going to get better. (자폐성 장애아동의) 부모는 우리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우스꽝스러운 일들에 함께 웃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이 절대로 좋아질 리 없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함께 울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Michael A. Ellis

다시 예전처럼 웃을 수 있을까? 외동 아들 벤이 태어나고 뭔지 설명할 수 없는 깊은 불안이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다. 아무리 초보 엄마라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이 이렇게 고된 일일 수가 없었다.

나의 어려움을 가족이나 지인에게 털어 놓는 일조차도 조심스러웠다. ‘자식을 감당하지도 못하면서 낳은 못난 엄마’라고 나의 부족함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듯했고, ‘다루기 힘든 어려운 아이’라고 아들을 낙인 찍는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벤과의 일상은 하루 종일 롤러코스터를 타는 일처럼 멀미가 났다. 아침에 커튼을 열면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고, 목욕을 할 시간엔 마치 익사하다 살아난 아이처럼 공포에 질려 울부 짖었고, 옷을 갈아 입자 하면 발버둥을 쳤고, 장난감을 사준다고 해도 외출을 완강히 거부했다. 심지어 엄마가 “까꿍!‘ 하며 안아주면 다른 아이들은 ‘까르르’ 좋아서 숨이 넘어 간다고 하는데 벤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너무나 작고 연약하여 엄마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기가 어떻게 이렇게 호불호가 분명할 수 있는지, 고래 심줄 보다 강력한 의지는 어디서 나와서 엄마를 수시로 무기력과 혼돈의 상태로 몰아 넣을 수 있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나의 미숙한 “양육 방법” 탓이라며 누군가 정확한 이유라도 알려준다면 차라리 고마울 지경이었다. 그렇다면 엄마도 덜 답답하고, 벤을 덜 괴롭히고 덜 짜증나게 하는 방법이라도 모색해 볼 텐데, 어디서부터 시작을 하고 누구를 찾아가야 하는지 오리무중이었다.

임신 전부터 읽은 수많은 ‘출산과 양육’ 관련한 책들에서 언급하는 대부분의 양육 방법은 벤에게는 적용하기 어려운 것들 투성이었다. 좋아하는 몇가지 메뉴를 제외하곤 음식이나 먹는 일 자체에 관심이 없어서 식탁으로 데려 오기까지 이미 기력을 다 소진하고, 씨리얼을 먹다 우유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고 분노를 품어내는 아이에게 ‘식사 예절 타령’은 얼마나 한가한 소리인지를 깨닫는 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최선에 열심을 더해 노력하면 할수록 늪 속으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나름 아이들을 잘 이해하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던 ‘괜찮은 교사’라고 여기며, 남의 자식들을 수도 없이 만나서 가르치던 교사 엄마는 원인 모를 깊은 자괴감과 상실감에 빠져 들었다. 그동안 의심없이 안전하다 믿으며 발 딛고 살았던 땅바닥에 금이 가고 강도 높은 지진이 일었다. 세상이 전복됐다.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걸까?’ 집 근처 소아과 몇 군데를 방문했다. 한국말을 또래에 비해 곧잘하고, 몸의 운동 기능이 또래에 비해 뒤지지 않고, 의사의 질문에 대답도 하고 눈도 맞추는 벤을 보며 의사는 엄마인 나를 의심했다.

“엄마가 너무 예민하거나 아이를 천재로 만들고 싶은 거 아니에요?”

모욕감과 수치스러움이 더해졌다. 벤을 잠깐 만난 의사보다 24시간 함께 보내는 나의 본능을 믿기로 하고 인터넷 검색에 들어갔다. 벤이 우주에서 떨어진 아이가 아니라면, 아이 한 명 키우는 일이 이렇게 난해한 일이라면 분명히 이유와 적절한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평소에 공부하기 좋아하는 엄마는 그렇게 ‘장애 월드’에 발을 들였다. 발달장애, 아스퍼거 증후군, 서번트 증후군, 자폐성 장애, 지적장애, 강박장애, 정서장애, 행동장애, ADHD…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지는 낯설고 두렵기만 한 장애의 종류에 압도 당해서 엄마는 익사할 것만 같았다.

‘왜 내 주변엔 발달 장애인 친구나 지인이나 가족이 한 명도 없을까?’ 살면서 한번도 품어보지 않은 바람이 자동으로 튀어 나왔다. 내가 지금 겪는 일을 미리 경험한 사람이 내 곁에 있다면 얼마나 위로와 안심이 될까 싶었다. 인생이 얼마나 얄궂은 지, 그 동안은 나와는 무관한 딴 세상 사람들처럼 보였던 사람들, ‘장애인과 가족들’이 마침내 인식의 장으로 들어왔다.

벤의 발달이 다르다는 사실이 점점 확실해 지고 점차로 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가자 제일 먼저 착수한 일이 나라를 갈아타는 것이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한국에서 교사로서 살아 온 엄마는 겁이 덜컥 났다. 평생 근무해 온 학교 안의 제도와 문화 중에서 그 동안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관심도 없었던 세상이 수면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내가 근무했던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외딴 섬처럼 존재하던 특수학급이 떠올랐고, 통합 학급 담임을 기피하던 교사들의 모습이 떠올랐고, 가끔 내 수업에 조용히 들어왔다 사라지는 이름도 얼굴도 잘 알지 못하던 특수학급반의 아이들이 떠올랐고, 내 수업에 참여 시키면서 저자세로 부탁하던 특수교사의 난처한 얼굴이 떠올랐고, “왜 특수학급 애들이 굳이 일반 교실에서 수업을 받으려 하는지 모르겠어!” 라고 부끄럼없이 말하던 동료 교사의 말이 떠올랐다.

“장애 당사자 부모들은 피해의식에 너무 젖어 있는 거 같아!” 라고 말하던 평소에 따뜻하고 인정 많던 옆자리 부장 교사의 말이 송곳처럼 내 온몸을 후볐다. 어쩌면 나도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이런 독한 말들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제까지는 한 귀로 듣고 흘려 보냈던 차별과 편견들이 더 이상 남의 일이 되지 않는 일, 바로 ‘발달장애 아동의 부모’가 되는 일이란 것을 뒤늦은 후회 속에서 깨달았다. 차라리 낯선 곳에서 시작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아들의 정체성에 눈뜨기 시작한 이상, 끊임없이 학교에 벤의 지원을 요청하고 통합 교육의 문제를 지적하고 부당함을 개선하라 요구 할 ‘민원 쟁이’ 엄마가 될 게 뻔했다. 그리고 한국의 교육 현장에서 그 일이 얼마나 무모하고 힘 빠지는 일인지 가장 잘 아는 사람도 엄마다.

아이가 제일 처음으로 접하는 사회이자, 어찌 보면 아이의 미래를 가장 치명적으로 결정지을 수 있는 학교 현장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벤이 관통할 인생의 여정에 복병처럼 넘쳐 날 장애물들을 모두 제거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그것들이 아들의 삶 자체를 잠식하지 않도록 도와 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엄마의 노력만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에 더해 다양성을 포용하는 교육제도와 학교 문화와 우리 가족을 밀어내지 않는 따뜻한 사람들이 필요했다.

최소한 학교가 당사자 아동의 엄마인 나를 ‘교육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내가 지닌 특별한 경험과 정보를 중요한 ‘교육적 자원’으로 받아들이고, ‘교육의 협상 테이블’ 에 앉혀 주기라도 한다면 어떻게든 힘을 내볼 수 있을 거 같았다. 그 정도만 해줘도 나에게 닥친 몫을 기꺼이 끌어 안고 울며 웃으며 살아질 거 같았다.

그래서, 엄마는 인생을 건 모험을 시작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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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루나 (bom022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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