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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인들이 놓치는 시각장애인의 곤란함

시각장애인의 이사 고난기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0-05-19 13:20:15
이사할 생각은 그전부터 하고 있었는데 엄두가 나지 않아 차일피일 미뤄온 것이 벌써 수년째다. 그런데 하루가 다르게 체력은 떨어지고 감각도 둔해지는 것이 더 지체했다가는 이사할 마음을 접어야 할 것 같아서 근래 집을 알아보는 중이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은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곳으로 몇 년간 살림을 살았던 기억이 있어서 실명한 후에도 집안에서는 별 어려움 없이 생활해 왔다. 그런데 전혀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집을 구하고 가구를 배치하고 또 그 구조에 익숙해지기까지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하다.

쉽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집을 알아보고 살피는 것부터 엄청난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했다. 시력이 전혀 없는 필자가 집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손으로 더듬고 팔이나 걸음으로 넓이를 가늠할 수밖에 없다.

도움을 받으며 집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벽면을 따라 방이며 부엌, 욕실, 거실을 더듬어 너비를 가름하고 창문의 위치와 크기 그리고 베란다에 이르기까지 손으로는 더듬고 귀로는 설명을 듣고 머리로는 이미지를 그려야 한다.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이 집 구조를 살피는데 동원되어 시간가는 줄 몰랐는데 나중에 보면 한두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한두시간을 그렇게 하고 나오면 심신이 지친다.

그래도 내색은 할 수 없다. 나야 내가 살 집이니 고생하는 건 당연하더라도 옆에서 설명해 주는 사람이나 가만히 기다려 주는 집주인과 부동산 중개인을 생각하면 더듬는 손길이 한없이 더딘 것 같아 미안하기만 하다.

게다가 옷가지나 개인적 물건을 본의 아니게 더듬을 때면 도둑질하다 걸린 사람 마냥 미안하고 민망해진다. 내색은 안하지만 집주인도 썩 기분은 좋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여러 사람 고생한 만큼 성과도 있으면 좋으련만 내 머릿속에 그려진 집 구조는 이 빠진 퍼즐 조각처럼 전체적인 이미지는 그려놓지 않는다. 그러니 난감하고 답답할 노릇이다. 정말 딱 1초만이라도 볼 수 있으면 이리 헤매지는 않을 텐데....

설명하는 이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동서남북도 어떤 물건이나 위치도 전혀 보지 못하는 필자에게는 기준이 되지 못하는데 정안인은 그들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하더라도 필자에게는 그저 동문서답하는 격이다.

코끼리를 생전 본 적 없는 맹인이 코끼리에 대한 설명만으로 실제 코끼리를 상상할 수 없듯이 설명만으로 사물을 이미지화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설혹 이미지를 상상하더라도 주관적인 설명을 듣고 주관적으로 해석해서 그려지는 이미지는 실제와 상이한 경우가 왕왕 있다.

사물의 전체를 직접 만지면서 설명을 듣는 게 가장 정확하긴 한데 덩치가 큰 것은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인지한 부분들을 조합 연결시키는 게 관건인 셈이다.

그나마 세상을 보았던 중도 시각장애인들은 설명을 듣고 기억을 소환해서 이미지를 그려내기 용이하지만 선천적으로 시각장애를 가진 분들에게 설명만으로 사물을 이미지 하는 건 매우 난이한 문제다.

정안인에게 이미지는 무의식적 반사적으로 인지되는 만큼 시각장애인의 실제적인 곤란함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시각장애가 있으면 보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건 알지만 보지 못함으로써 도움받고 배려해줘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정안인에게는 너무나 뻔하고 당연해서 무심코 지나쳐 버리는 그 사소함들로 시각장애인들은 힘들다.

계단이 있으면 계단이라고 말은 해주는데 그게 내려가는 계단인지 올라가는 계단인지는 말이 없다. 그리고 열심히 설명을 하는데 말 속에 지시대명사가 일색이다.

이것저것 여기저기 이사람 저사람 가리키는 손짓도 의미하는 눈짓도 보지 못하는데 이것이 무엇인지 저 사람이 누구인지 알 길이 없다. 답답한건 시각장애인인데 알아듣지 못한다고 되려 짜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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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경미 (kkm75@kbuwe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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